
서울소방방재본부
최근 서울 종로의 한 고시원에서 발생한 불로 7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치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 이번 사고는 우리 사회의 최후의 거주지인 고시원으로 몰리는 주거취약계층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고시원이 취약계층의 주거공간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현재 전국적으로 고시원 1만2000여곳에서 15만여명이 거주한다고 한다. 지난해 고시원에서 일어난 화재는 72건에 달한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불이 나고 있는 것이다. 고시원에 거주하는 상당수 극빈층이 화재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오래된 다중이용시설의 안전문제가 지적된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8년 서울 강남구 고시원 화재로 6명이 숨지고 7명이 다친 데 이어 가장 큰 인명 피해다. 지난 6월 서울 용산구 고시원에서 발생한 화재도 7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실질적인 안전 대책 없이는 이 같은 참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고시원은 미로 같은 좁은 공간엔 많은 사람이 살고 있어서 화재에 취약하다. 영세한 고시원들은 방염벽지나 커튼을 사용하는 사례가 드물다. 임대수익을 높이기 위해 방 쪼개기를 하면서 환기시설과 대피로가 축소되는 경우도 적잖다. 방화시설이나 대피로가 확보되지 않아 화재가 한번 발생하면 인명피해도 클 수밖에 없다.
고시원은 전체면적이 600㎡ 미만이거나 2004년 이전에 지어진 건물은 소방법을 적용받지 않는다. 간이 스프링쿨러 같은 장비가 마련된 고시원도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기초지자체와 소방기관이 함께 고시원의 안전과 취약계층의 복지를 연계해 보살피는 일은 중요하다. 실제 관수동 고시원 화재 참사에서 숨진 7명 중 4명이 기초생활수급자였다.
정부가 실시한 ‘주택 이외의 거처 주거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전국적으로 1만1000여개에 달하는 고시원에 15만2000명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시원뿐 아니라 쪽방, 숙박업소, 비닐하우스 등 주택으로 분류되지 않는 취약한 주거지에 살고 있는 이들은 37만가구에 달한다. 이들 상당수는 보증금 몇백만원과 월세 몇십만원을 마련할 수 없는 저소득층이다.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취약계층, 고령자 주거지원 방안’에는 주거환경이 열악한 노후 고시원 등을 매입해 양질의 주택으로 개선한 뒤 저소득 가구에 임대주택으로 공급하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임대주택 보증금과 월세를 낼 여유가 없으면 고시원을 벗어날 수 없다. 공공임대주택의 문턱을 낮춰 보다 많은 주거취약계층이 입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사소한 방심과 무관심, 불량 요인에 대한 습관적인 방치가 대형 참사의 원인이다. 당장은 현재 수십만명이 살고 있는 고시원이나 여관, 쪽방 등 주거취약계층 거주시설에 대한 화재 안전 점검과 관리 대책 마련이 시급하며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안전 대책 못지않게 주거빈곤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