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뚫는 굉음에 무너진 농심

“기준치 이내” 뒤에 가려진 생명…염소 150마리 떼죽음

고속도로 한 줄을 뚫는 발파가 한 농가의 생계를 통째로 흔들었다. 당진~대산 고속도로 터널 공사 과정에서 발생한 굉음과 진동으로 인근 염소 농가에서 약 150마리가 집단 폐사했다. 공사는 계속됐고, 대응은 늦었다. 소음기준치는 지켜졌다는 말만 남았다.

 

발파 시작 후 축사는 죽음의 공간으로

 

사건은 지난 7월 초 충남 당진시 정미면 일원에서 시작된 천의1터널 발파 공사 이후 불거졌다. 터널과 500m 떨어진 염소 농가에서는 발파가 거듭될수록 이상 증상이 이어졌다. 임신한 어미 염소가 놀라 쓰러지고, 출산을 앞둔 개체가 새끼와 함께 숨지는 일이 반복됐다.

농장주 윤석남 씨는 “발파가 있는 날이면 염소들이 축사 안에서 통제 불능 상태가 됐다”며 “아침마다 문을 열 때마다 또 죽어 있을까 두렵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말했다.

 

발주처인 한국도로공사와 시공사 태영건설의 초기입장은 단순했다.

 

측정된 소음은 기준치 이내.”

 

하지만 농가는 이 설명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윤 씨는 “문제는 평균 수치가 아니라 순간적으로 터지는 폭음과 진동”이라며 “사람도 놀라는데 가축은 버틸 수 없다”고 했다.

윤 씨는 스스로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부검을 의뢰했고, 결과는 질병이 아닌 외부 요인이었다. 그럼에도 도로공사 측은 명확한 조치를 내놓지 않았다.

 

조정 신청에도 묵묵부답더 가까워지는 2차 발파

 

윤 씨는 결국 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했다. 그러나 도로공사는 서류 제출 기한 직전까지 대응하지 않으며 논란을 키웠다. 그 사이 예정된 2차 발파 지점은 농가와 230m까지 좁혀질 예정이었다.

윤 씨는 “지금 필요한 건 조사 보고서가 아니라 당장 살아 있는 염소를 살릴 조치”라며 “이주라도 시켜 달라고 했지만 돌아온 말은 ‘기다리라’는 말뿐이었다”고 말했다.

 

집회 이후에야 나온 중단·이주카드

 

상황이 공론화되고 집회가 이어진 뒤에야 도로공사는 태도를 바꿨다.

피해 구간 공사 중단.

연내 대책 마련.

책임자 직통 소통 창구 제공.

이 같은 합의가 이뤄졌고, 시공사는 공사 종료 시까지 농가 임시 이주를 제안했다. 윤 씨는 이를 받아들이며 “최소한 남은 염소들의 생존은 지킬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기준은 있었지만 보호는 없었다

 

이번 사태는 대형 토목공사에서 반복되는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 법적 기준은 있었지만, 예견 가능한 피해에 대한 선제적 보호는 없었다. 가축 피해가 발생한 뒤에야 공사를 멈추고 이주를 논의하는 방식은 공공 공사의 책임과 거리가 멀다.

전문가들은 “터널 발파처럼 충격성 소음이 수반되는 공사는 평균 소음 기준만으로 안전을 판단해선 안 된다”며 “가축·주민을 포함한 영향 평가와 사전 이주 대책이 제도화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본지는 이 사안과 관련해 한국도로공사의 공식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

터널은 뚫렸지만, 행정의 책임은 아직 막혀 있다.

 

      임 홍 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