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가전·전기차 배터리까지 전자폐기물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지만, 한국의 처리 시스템은 10년째 제자리다. 전국 곳곳에서 폐전자제품이 야적되고 불법 해체 시장이 다시 커지는 등 국가적 환경위기로 번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속도면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전자제품 소비국이 아니라 전자폐기물 발생 강국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환경부 추정치에 따르면 올해 국내 전자폐기물 발생량은 전년보다 15% 이상 증가했다. 교체 주기 단축, 신제품 출시 증가, 대형가전 확대가 배경이다.
그러나 전국 20여 곳의 전문 처리시설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일부 지자체는 수개월째 폐가전을 야적하고 있으며, 처리 대기 물량은 처리량의 두 배를 넘어섰다.
한 수도권 지자체 관계자는 “시설 증설은 주민 민원과 예산 문제로 어렵고, 수거량은 매년 급증한다”며 “관리 체계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불법 해체, 독성물질 노출… 현장은 ‘환경 사각지대’
적정 처리를 받지 못한 폐전자제품 상당량은 음성 시장으로 흘러들어간다. 납·수은·브롬계 난연제 등 고독성 물질이 포함된 기판이 맨손에 가까운 방식으로 뜯겨나가고, 냉장고·모니터에서 빠져나온 냉매가스는 아무 조치 없이 대기 중에 배출된다.
현장을 확인한 전문가들은 “이처럼 무방비 상태에서 중금속과 냉매가스가 누출되면 지역 환경 전체가 오염될 수 있다”며 “전자폐기물은 일반 쓰레기와 비교할 수 없는 독성을 가진 위험물”이라고 지적한다.
전자폐기물은 금·은·팔라듐 등 희소금속 확보의 보고(寶庫)로 불린다. 그러나 한국의 회수율은 30%대에 불과해 OECD 최하위권이다.
제품 설계 단계부터 분해가 어려운 구조가 많고, 기업의 회수·재활용 의무(EPR)는 약한 규제와 낮은 부담금 탓에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이 크다.
한 금속자원 연구자는 “한국은 자원이 부족한 나라가 아니라, 자원을 ‘버리는’ 나라”라고 꼬집었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B교수는 “전자폐기물 문제는 단순한 환경문제가 아니라 자원안보와 국가경쟁력의 문제”라며 다음과 같은 대대적 개편을 제안했다.
전국 단일 통합수거 시스템 구축
분해·재활용 용이한 제품 설계 의무화(EU 수준)
금속 회수 첨단기술 국산화
기업 책임 강화(EPR 목표 상향·부담금 현실화)
가정 방문수거·즉시 인센티브 도입
배터리류 폐기물 별도 관리제 구축
전문가들은 “현 체계를 그대로 유지할 경우 3~5년 내 전자폐기물 대란이 현실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전자제품 소비 강국이다. 그러나 그렇게 빠르게 쓰고 버린 제품을 감당할 시스템은 마련돼 있지 않다.
전자폐기물은 방치하기 가장 쉬운 쓰레기지만, 한 번 유출되면 토양·대기·수질에 되돌릴 수 없는 피해를 남긴다.
전문가들은 전자제품을 바꾸는 속도보다, 처리 시스템이 더 빨리 진화해야 한다.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늦는다.
옥 형 준 기자